그동안 블로그를 버려뒀다가, 다시 재개하는 일주일에 책 한권입니다.


이 책에 대한 정보는 다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307308





  예전에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무회의에 들고 나와 화제가 되었던 책, 아오키 오사무씨가 쓴 일본회의의 정체 입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직접 인터뷰와 자료수집, 면밀한 조사를 동반한 치열한 취재로, 언뜻 이야기만 들으면 농담이나 거짓말 혹은 음모론 등의 헛소리로 들릴법한 거대 우파조직 '일본회의'의 기원과 역사, 그 소속원과 규모, 활동 방법과 목표, 일본 정치권과의 연계, 그리고 조직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성격까지 그 전부를 상세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집중조명하고 있는 일본회의, 그리고 이 책의 내용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쓰는 것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 저자의 노력과 수고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이 책을 꼭 직접 여러분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제 바람과 어긋나는 것이기에 책의 내용을 자세히 옮기진 않겠습니다.


  그 대신, 믿기 힘든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고자 합니다.


  700여 명의 국회의원 중 281명의 국회의원이 당적을 초월해 가맹해있는 단체가 있고, 

  그 단체에 정부 내각 20명 중 13명이 소속되어 있으며,

  전국에 243곳에 달하는 지부를 두고 지방 의회 의원 중 1700여명이 가담한 '정치 로비 단체'가 있는데,


  이들은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한 토착 종교의 자금 및 인력, 홍보 및 선전 지원을 받고,

  그 토착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고자 공식적으로 출범시킨 종교계 국회의원 카르텔(이라는게 존재하는 것도 놀랍지만)과 공공연히 연대하여,

  이 종교가 원하는 나라의 체제와 형태로 국가를 바꿔나가고자 활동하고 있으며,


  이 '정치 로비 단체'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 활동을 이끌어온 핵심 실무진과 수뇌부 중 상당수가,

  자기가 쓴 글과 잡지를 읽으면 병이 낫고 영생한다고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 교단의 청년회 혹은 교인 출신이며,

  이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주장한 '모든 종교는 우리나라의 왕에서 시작된다', '우리 민족은 신에게 선택받았다'라는 사상에 깊이 몰두하여

  지금도 이 사상을 실현하여 나라를 '살아있는 신이지 왕'과 '신민'이 하나되어 모든 주권을 '왕'에게 바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는 기고문을 발표하는,


  민주주의와 주권재민, 정교분리를 모두 부정하는 경악스러운 극단적인 사상을 지닌 이 '정치 로비 단체'가 추진하는 정치 로비와 활동이

  종교계, 문화계, 재계의 적극적인 지원과 영합하에 수 차례 이상 뚜렷하고 성공적인 결과를 내, 상당수의 법안과 외교적 행보에 영향을 끼쳤으며,

  이제 이 단체는 이를 넘어 국가 설립 정신과 그 목적을 담은 '헌법'을 개정하는 데까지 그 손길을 뻗치고 있다면,


  그리고 그 헌법 개정의 목적이 자신들이 일으키고 패배하여 자국과 타국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피폐하게 했던

  전쟁 전의 신정주의 군부 독재 체제의 부활과 그 당시의 강성했던 자국의 모습을 되살리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들이 그 목적 달성의 지척에 다다랐다고 공공연히 자신하고 있으며,


  그런데도, 이러한 조직이 20년 넘게 아니 30년 가까이 활동했는데도 이 단체의 실체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고작 몇 년 전이고,

  그것마저도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 방기되고 있다면,


  그래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사실은 알량한 허울 뿐이며 그 허울마저도 사라지기 직전에 놓여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믿기지 않으시겠죠. 근거가 부족하다고 느끼실겁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런 조직이 제 1세계 선진국에 있을리가 없지요.


  그러나 이걸 보고 흥미가 동하신다면, 어떤 흰소리로 이 '음모론'을 뒷받침할지 궁금하시다면, '혹시라도' 하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드신다면...


  읽어보세요.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제가 감히 약속드리죠. 





  덤으로 이 책에서 알 수 있는 재밌는 사실 몇 가지.

 

  - 일본에는 미시마 유키오(자위대에게 천황을 떠받드는 국가로 회귀하는 쿠데타를 선동하다 외면받고 자살한 극우 작가)의 사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연구하며 계승하자는 '미시마 유키오 연구회'가 존재하며, 그 회장은 재계 유력 인사이고 정계 유명 인사들과 언론 분야 논객들이 가담해있다.


  - 흔히 매체에서 나오는 일본인의 문화적/종교적 공간인 '신사'와 그 신사를 운영하는 신관과 무녀 같은 인력들 중 대다수가 '신사본청'이라는 조직에 소속되어있으며, 신사본청은 전쟁 전으로의 회귀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신토정치연맹'을 결성, 보수 우파를 지원하였다. 신토정치연맹의 하부 조직인 신토정치연맹 국회의원간담회에는 700여명의 일본 국회의원 중 304명이 가담해있고, 아베 내각의 장관급 인사 20명 중 17명이 가입해있다.


  - 신사본청과 이들과 뜻을 같이하는 산토정치연맹 국회의원간담회의 정책목표 중 하나는 '일본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야스쿠니의 영령에 대한 국가 의례 확립 지향'이며, 일본 극우라면 빠지지 않는 주장인 '신헌법의 제정' 역시 포함되어있다. 이들은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신사에서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헌법 개정 서명 및 극우 집회 홍보 등을 진행하고 있다.


  - 한국에서 악명이 높은 '새역모'는 일본회의 하부 조직 중 하나다.


  - 일본회의의 하부 조직 중 하나이자 일본회의의 뜻에 동조하는 '일본회의 국회의원간담회'에서 유력 멤버로 꼽히는 한 국회의원은, 자신이 정계에 들어오게 된 계기를 '난징 대학살의 백명 인간 베기 사건'을 보도한 언론을 명예훼손이라 고소한 피의자 유족을 변호하게 된 일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덤이라고 해놓고 왜 책 내용 다 적냐고요? 아 이게 덤이라니까요. 못 믿으시겠어요? 


  읽어보시면 압니다.





'일본의 정치사는 천황이 문신, 무사, 정치가에게 정치를 '위임'해온 것이 전통이다. 천황이 국민에게 정치를 위임해온 것이 일본의 정치 시스템이므로, 서양의 정치사와는 완전히 다른 역사다. 천황이 국민에게 정치를 위임하는 시스템에서 주권은 어느 쪽에 있는가, 이에 관해 서양적인 양자택일론을 그대로 도입하면 일본의 정치 시스템은 해체된다. 현행 헌법의 국민주권 사상은 이 점에서 부정되어야 한다.'

- 가바시마 유조, 일본회의 사무총장. 일본청년협의회 기관지 '조국과 청년' 1993년 4월호.

- 아오키 오사무 저, '일본회의의 정체'에서 2차 발췌.


Posted by 컴덜

https://commder.tistory.com/153



한 때 국내 최고의 SF클럽이라고 불렸던 곳에서, 최고 운영자라는 사람이 앨리스소프트의 대제국을 버젓이 옹호하는 글을 쓰고(http://www.joysf.com/4238352), 게임의 우익성에 대해 비판하니 '해보기는 하고 이야기하는거냐'라고 말을 하고, 평화를 설파하는 내용이라고 흰 소리를 해댔고, 이미 그 당시에도 너무나도 너무나 잘 알려져있었던 제작사의 극우성향을 애써 외면하고, 심지어는 '일본산 19금 게임에 무슨 도덕적인 잣대를 따지냐'라는 실로 어이없는 언사를 내뱉던 그 모습들.


저 언사를 내뱉고, 저런 글을 썼던 사람들은 지금의 앨리스소프트를 보고, 칸코레를 보고, 일본의 폭주를 보며 뭐라고 생각할까?


'그래도 이 게임은 공평하게 일본도 풍자한 개그 미소녀 게임이야'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할까?



뭐, 그렇게 생각하라지.


다시 봐도 재밌는 JOYSF 당시 최고운영자님의 글 두 구절 남기고 마무리.



'그렇다면 2차 대전의 패러디처럼 만든 것은 어떤가? 한국인으로서 이는 분명히 불쾌하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역사 왜곡이란 형태로 접근하는 것은 애매합니다. 이 게임은 조금 닮았을지 몰라도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니까요.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별 관심을 표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야기 떡밥으로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로서는 불편한 역사인 일제 강점기, 그리고 2차 대전 시대와 비슷한 느낌을 바탕으로 한 패러디 작품처럼 보이는 것이 더욱 불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역사 왜곡 등 심각하게 바라볼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개그?'


'2차 대전이 끝나고 5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일본인은 2차 대전 당시의 일본인이 어리석고 바보 같다고 생각합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니 뭐니 하는 것은 정말로 극소수. 대다수 일본인은 수상이 참배하건 말건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일본의 영광이니 뭐니 해도 전쟁을 해야 한다거나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손꼽습니다.


일본의 극우파가 더욱 날뛰는 것은 바로 그런 무관심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눈길을 끌 수 있을테니까요. 거대한 세를 과시하고 날뛰지 않으면 잊혀져 버릴테니까요.'



알고 보면 더 재밌는 덧붙임.


1. 일본에서 장기집권하고 있는 자민당의 강령은 '점령국 체제 하에서 만들어진 헌법을 자주헌법으로 개정'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단 한 시도 바뀐 적이 없다.

2. 대제국은 2011년 4월 발매되었으며, 저 논쟁이 일어난 2011년 5월의 두 달 전인 3월에 일본은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한 교과서를 검정에 통과시키며 지속적인 도발을 자행했다.

Posted by 컴덜

격조했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연예인 관련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특히나 걸그룹 멤버 이야기를 다루게 될 줄은 몰랐지만, 여하간 오늘 오래간만에 블로그 포스팅을 하며 다룰 주제는 바로 걸그룹 TWICE 멤버 사나의 레이와 연호 발언 논란입니다.

 

 

레이와, 잘 부탁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해당 사건을 잊으셨거나 잘 모르실 수 있기에, 또한 오늘 할 이야기와 긴밀히 연관이 있는 사안이기에 기사를 첨부해둡니다.

 

트와이스 사나, 연호 발언…한·일 감정 싸움으로 비화하나[아시아경제 19년 5월 1일자 기사]

 

이 사건은 일본에 새로운 덴노(천황, 일왕)이 즉위하면서 정한 새 연호(원호)에 대해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 국적의 연예인이 새 연호로 다가오는 새 시대를 환영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자신의 SNS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남긴 데에 따라 발생한 논란입니다.

 

이 논란에 대해 처음에는 위와 같은 심각한 분위기의 기사가 있었으나, 이후 우리 '인터넷 수사대'의 활약을 통해, 그리고 갑작스레 일제히 등장한 '일본인에겐 평범한 일상적 언어 사용일 뿐이다'라는 옹호성 기사를 통해 TWICE의 사나의 활동에 대해 악감정을 지닌 여성 커뮤니티의 모함으로 빚어진 해프닝으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인터넷 대중주의/하위문화 위키형식 사이트인 '나무위키'에서는 이 사건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2019 4 30, 사나가 트와이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일본의 천황의 왕위 계승에 따라 연호가 헤이세이에서 레이와로 바뀌면서 한 세대가 저무는 것에 대한 느낌을 일본어로 게시한 글을 두고 theqoo를 비롯한 일부 사이트에서 해당 사실이 논란이 되도록 선동하면서 악플 테러를 가한 사건이다.'

- TWICE 사나 일본 연호 사용 논란 선동 사건[위키 2019년 8월 18일자 수정본]

 

해당 문서는 일본의 연호 사용에 대해 '군국주의와 관계가 없다'라고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있습니다. 바로 다음처럼 말입니다.

 

'연호는 천황제에서 파생되었으며, 일제 및 극우는 천황을 숭배하였으므로 천황제는 극우의 상징이고, 따라서 연호 변경에 대한 개인적 소회를 SNS에 올린다면 극우다?

  먼저 연호가 천황제에서 유래하였다는 이유로 연호 사용은 천황제를 옹호함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비형식적 오류이다. 연호는  일본 제국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기년법 문화로, 동북아시아 유교 문화권 국가들은 다 한번씩은 연호를 주창했던 적이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신라 진흥왕은 건원, 개국 등의 연호를 사용했으며, 고종 황제도 그 유명한 광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즉 연호라는 것은 일본 천황제만이 가진 특성이 아니며, 연호를 사용하거나 연호의 변경을 소회한다고 해서 천황제를 옹호한다고 볼 수도 없다. 또한 극우 및 일제가 천황을 찬양하였다는 이유로 천황제 자체가 극우 및 일제의 상징이라고 보는 것은 논리적 오류의 여지가 있다.'

- TWICE 사나 일본 연호 사용 논란 선동 사건[무위키 2019년 8월 18일자 수정본]

 

이러한 의견을 정당화하기 위해 많은 국내 유명인들과 언론기사, 학자들의 발언을 언급하며 논리를 보강하기도 하였습니다.

 

'“연호는 일본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것일 뿐”, “일본인들은 공문서에 작성하는 생년월일을 쓸 때도헤이세이 몇 년 출생을 기입한다. 우리는 서기를 쓰지만 일본인들은 연호를 사용하는 것뿐이다. 딱 그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연호 사용은 일본인들에게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고 크게 시대를 구분할 때 사용된다. 일왕제에 대한 숭배나 과거사 미화로 연결시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예를 들어 쇼와 시대에 태어났다고 하면 구세대, 헤이세이에 태어났다고 하면 신세대 로 나눈다. 아마 트와이스 멤버 역시 자신이 태어날 때의 연호인 헤이세이가 끝나고 레이와가 시작됐으니 구세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글을 작성하지 않았겠느냐”'

- 강태웅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1차 출처 : 동아닷컴, 2차 출처 : 상기 나무위키 문서)

 

'A.D. 연호에 익숙한 지역에서는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센테니얼이나 밀레니엄 전환에특별한 감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이상한 사람'. 일본인의 시간 감각을 지니고 살아온 사람이 일본 연호 변경에특별한 감상을 느끼는 것도, 비난할 일이 아닙니다. 그걸 비난하는 게이상한 사람이죠.'

 

'아직도 일본 연호가군국주의 산물이라고 고집부리는 사람들, 우리가 쓰는 A.D. 연호가 제국주의의 산물이고, 일본 연호는 그저고대의 잔재일 뿐입니다. 21세기에 아직도 한 사람의재위 기간고유 시대로 삼는 건, 욕하거나 부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안쓰럽게 여긴다면 몰라도. 그리고 남을 공격하는 무기로 '무식'을 사용하는 건, 아주 위험하고 나쁜 짓입니다.'

-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 (1차 출처 : 본인 페이스북, 2차 출처 : 나무위키 문서)

 

"헤이세이 수고"…트와이스 사나 연호 언급, 과연 먹을 일일까[스포츠조선 19년 5월 1일자 기사]

- 상기 나무위키 문서에 인용됨

 

그렇군요. 일본 전문가이신 문화산업학부 교수님부터 SNS를 통해 여러 활동으로 이름을 알려 오신 역사학자분까지 일본의 원호 사용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하셨으니, 저 같은 비전문가 입장에서는 딱히 반박할 말도 없고 이유도 없을 겁니다. 아무 상관없는 기자의 개인의견까지 마치 공식적인 무언가라도 되는 마냥 인용한 건 좀 그렇긴 해도 말입니다. 역사를 공부하신 '학계 인사'들의 발언을 인용하는데 일반인이 어찌 뭘 말하겠습니까.

 

물론 한일관계가 나날히 악화되고 있던 시점에서(4월만 해도 지금만큼은 아니더라도 아베의 일관된 행보와 도발은 뚜렷이 그 면면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뻔히 아베 정권의 물심양면의 후원이 집중되어 일본 최대의 행사로 연출된 새 연호 발표에 대해 호의적인 메시지를 내놓는 것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반발하는 게 과연 '연호가 뭔 지도 모르고 무작정 자극적으로 기사를 낸 기자와 이를 확대해석한 악플러들, 선동에 휩쓸린 사람들의 일대 쇼' 취급을 받아야 할 건진 여전히 의문부호가 남지만요.

 

'결론은, 일본 국적으로 한국에서 연예인이 되었고, 이 사안에 대해 아무런 책임질 일도 문제도 없었던 20대 여성이 그저 한 시대가 저문다고 아쉽다고 쓴 글을 가지고 연호가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자극적으로 기사부터 낸 기레기와 그것을 쓸데없이 확대해석 한 악플러들, 가짜 뉴스와 혐오 선동을 들었다는 것을 알고도 자기가 선동당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말도 안되는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내며 버텨댄 사람들과 개티즌의 환장의 콜라보가 만들어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결국 5 2일에 이르러서는 하루의 광풍으로 지나가는 분위기이며 심하게는 원색적인 국가주의적 욕설을 하는 경우로 발전한 댓글들에서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난리쳤다는 내용의 댓글들로 여론의 방향이 점차 바뀌는 추세가 됐으나, 무엇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나온 가짜뉴스와 뜬소문이 어떻게 악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 또하나의 씁쓸한 사례만 남게 됐다. 다만 일부 여초 커뮤니티들은 5 3일까지도 인스타 글을 삭제해라, 사과해라, 피드백해라, 기분나빴던 사람들이 피해자다, 대중과 기싸움하냐, 이 정도로 욕먹을 일은 아니었지만 경솔했다, 실망스럽다 등의 말만 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역사학자 전우용이 문제없다고 하자, '역사학자가 문제없다고하면 문제없는건가요? 역사학자보다 역사 및 일본지식은 좋지 않지만 역사학자보다 애국심은 뛰어날 수 있습니다.' 하는 반응까지 보이고 있다.'

- 상기 나무위키 문서에서 내린 해당 논란의

 

그렇게 사건은 '자신보다 예쁜 연예인의 활동에 대해 악플을 남기며 선동하는 페미들의 추한 쇼로 빚어진 해프닝'으로 결론지어졌습니다. 이런 으로 말이죠.

 

 

단순한 해프닝?

 

물론 이 글이 여기서 끝날 거면 제가 이 글을 쓸 이유가 없었겠죠.

 

정말 사나의 레이와 연호 환영 발언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강태웅 교수님의 말처럼 일본인은 서기 대신 연호를 사용하는 것뿐이며 일왕제에 대한 숭배와는 연관이 없는 걸까요? 전우용 교수님의 말처럼 고대의 잔재일 뿐이고 조선의 연호나 '예수 연호' A.D.와 같은 걸까요? 우리 위키 형식 사이트인 나무위키에서 말하는 것처럼 연호 사용은 습관일 뿐이며 군국주의와는 관계가 없는 걸까요?

 

아니요. 관계가 있습니다. 아주 깊고도 깊은 관계가 있으며 이는 결코 뗄 레야 뗄 수도 없고, 일본 정부는 이를 뗄 생각도 없는, 그런 관계죠.

 

? 역사학자가 문제없다고 하면 문제없는 거 아니냐 고요? 너도 그 악플 선동자들처럼 역사학자보다 더 잘난 마냥 잘난 척이라도 할거냐구요?

 

악플 선동자(까놓고 이런 반발 감정이 과연 악플의 선동인지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이견이 깊지만)들에 대해서는 제 알바 아니고, 물론 저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일본과 한국, 그리고 연호를 사용해온 역사에 대해서 분명 학계 교수님들보다 이해가 일천한 일개 시민일 뿐입니다. 근데 무슨 믿는 바가 있어서 그런 식으로 단정을 짓냐고요?

 

강태웅 교수님과 전우용 교수님은 일본의 연호 사용을 일상이고 군국주의 및 천황 숭배와 관계가 없다고 말하셨죠. 근데 일본인으로서 태어나 일본인으로서 살며 일본의 원호(연호) 폐지 및 부활, 그리고 이와 얽혀 있는 일본 우익들의 활동을 취재해온 일본 언론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네요.

 

단정을 짓는 것은 제가 아닙니다. 바로 얼마 전 화제가 된 '일본회의의 정체'라는 책의 저자이자 전 교도통신 사회부 근무 저널리스트 아츠키 오사무씨죠.

 

 

일본회의

 

'일본회의의 정체'. 얼마 전 조국 전 민정수석이 청와대 내 회의에 들고 나와서 화제가 됬다는 그 책입니다. 솔직히 이 자리에서 자랑 겸 자책 삼아 고백하건대 저는 이 책이 언론에 화제가 되기 2년 전에 이 책을 접했고, 너무나 큰 인상을 받았던 터라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독후감 포스팅을 올리고자 했으나, 개인 사정으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이런 포스팅을 통해서야 다루게 되었습니다.

 

'일본회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공식적인 조직이며, 최근 국내 언론을 통해서 자주 조명되고 있는 집단입니다. 얼마 전 국내에 개봉한, 위안부 문제를 조명하는 '주전장'이란 영화에서도 이 조직을 집중조명하고 있지요. 상기한 대중주의 위키 형식 사이트인 나무위키에서도 일본회의를 다루는 항목이 있는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용이 그리 많지 않다가 조국 전 민정수석의 뉴스가 나오고 주전장이 개봉한 뒤로부터 갑작스레 내용이 보강되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유명인의 힘이 강하긴 합니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너무 깊게 다루는 것은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 책은 일본 종교계와 정재계, 그리고 예술계를 아우르는 일본 최대의 우익 결사체인 '일본회의'의 기원과 활동, 그리고 목적과 실상을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이 일본회의라는 단체가 어떤 단체인지 간단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제 의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그들의 설립 선언문을 인용하는 것으로 갈음하죠.

 


'우리나라는 자연과 공생하면서 전통을 존중하고, 해외 문명을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승화하면서 국가건설에 최선을 다해 힘써왔다. 메이지 유신으로 시작된 최초의 근대국가 건설은 이러한 국풍의 눈부신 정수였다. 또한 유사 이래 전대미문의 패전을 경험하면서도 천황을 국민통치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국가의 특색은 전혀 변함없이 이어져왔으며 황폐해진 국토와 정신적인 허탈감 속에서도 국민의 충실한 노력을 토대로 나라를 경제대국으로까지 발전시켰다.'

- 1997 일본회의 설립선언의 일부, 2차 출처 : '일본회의의 정체'

 


생각해보니 부족할 수 있어서 산하 단체도 소개하고 넘어가죠.

 


1.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 모임 (공동대표 : 사쿠라이 요시코)

2. 21세기의 일본과 헌법 유식자간담회 (대표 : 사쿠라이 요시코)

3. 메이지의 날 추진협의회

4. 다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민의 모임

5. 일본의 건국을 축하하는 모임.

6. 평화안전법제의 조기 성립을 요구하는 국민 포럼 (발기인 : 사쿠라이 요시코)

- 일본회의의 프런트 단체 중 일부, 2차 출처 : '일본회의의 정체'

 


이 정도면 대충 이 단체의 성격에 대해 설명이 되었다고 봅니다. 영향력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에서도 다루겠지만, 일본회의국회의원간담회 소속의 의원이 2015 9 15일 기준으로 중참 양원 합해서 281명에 아베 내각의 인사 중 7할 이상이 소속되어 있다고 하면 설명이 될 겁니다.

 

, 그럼 왜 이렇게 구구절절 일본회의라는 단체에 대해서 설명을 했느냐.

 

 

원호법제화 운동

 

일본회의의 기원은 두 단체로부터 비롯됩니다. 하나는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라는 학계·재계·정계·문화계 등 각계의 우파 인사들이 결집한 조직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라는 메이지 신궁 등의 일본 신토 종교 조직과 생장의 집이라는 신흥 종교의 인사들이 모여 만든 종교계 우파 조직입니다. 이 두 조직이 새로운 덴노(천황)이 즉위할 당시 봉축운동을 전개하며 긴밀히 협조하게 된 것을 계기로 하나의 조직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일단 종교계 우파 조직인 '일본을 지키는 모임'은 일단 제쳐두고,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를 좀 더 파고 들어가보죠. 이 단체의 설립 배경이 참으로 흥미로운데, 이에 대해 '일본회의의 정체'에서 아츠키 오사무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1981 10월에 탄생했는데, 이른바 '원호법제화 운동(일본의 공식연호를 기록방법으로 법제화하려는 운동-옮긴이)' 등을 추진한 단체를 발전시키고 개편한 것이었다.'

- '일본회의의 정체' 1 21p, 주석까지 포함해 그대로 옮김.

 


, 드디어 여러분이 주목하실 만한 단어가 나왔습니다. '원호법제화운동'. 바로 이 운동이 성공한 덕분에 일본은 새 덴노의 즉위 때 마다 새로운 원호를 쓰게 되었고, TWICE의 사나가 '레이와 환영'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혹자는 이렇게 말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래서, 일본 우익이 부활시킨 거랑 현재 쓰임새랑 무슨 상관이냐? 저 단순한 내용 한 줄만 가지고 문제가 있다고 몰아붙이는 것이냐?'라고요.

 

언급이 한 줄이면, 그리고 단순한 창립 계기면 제가 이렇게 안 썼겠죠?

 

원호법제화 운동(이하부터는 연호라는 단어를 모두 원호로 통일)은 단순히 한 일본 우익 단체의 창립 계기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운동이야 말로 일본 우익의 핵심적인 뿌리인 2차 세계대전 이전으로의 복고, 천황 숭배,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주권재민의 정신을 부정하는 종교성과 맞닿아 있는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며, 전후 일본 우익의 조직 형성과 정치력 투사 방법론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그 의미가 깊은 사건입니다.

 

원호법제화 운동에 대한 언급은 단순히 한 줄로 끝나지 않고 책 곳곳에서 꾸준히 등장합니다. 아니 사실상 이 책에서 원호법제화 운동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는 수준이지요.

 


'1장에서 말한 것처럼 생장의 집이나 신사계 등 우파계 종교단체가 총결집한 것이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었다.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결성된 직후에 추진한 것이 쇼와 천황의 '재위 50년 봉축운동'이었고, 곧이어 온 힘을 다한 것이 '원호법제화 운동'이었다.

 

이 또한 뒤에서 상세히 언급하겠지만, 전쟁 전에는 원호가 황실규범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전후에는 황실규범에서 삭제되어 원호의 법적 근거가 사라졌다. 따라서 원호를 법제화하자는 운동이 일었는데, 자민당 전 참의원 무라카미 마사쿠니에 따르면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결성되기 전부터 이 운동에 열심히 참여한 조직이 생장의 집 학생연맹과 일본청년협의회였다고 한다. <중략>

 

, 일본청년협의회와 일본협의회는 일본회의의 활동을 지지하는 실무진이다.'

 

'<전략>'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원호법제화 운동을 시작했을 때도 가바시마 씨가 사무국에 참가했습니다.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원호법제화를 요구하는 지방의회 결의 운동을 시작하고 약 1년 만에 전국 1,632개 시읍면에서 의회 결의를 합니다. 이 전략을 세운 이가 바로 가바시마 씨였습니다.

 

한편 '일본을 지키는 모임'에는 메이지 신궁의 신관인 도야마 가쓰시 씨 등이 나와 실무를 담당했습니다. 따라서 '일본을 지키는 모임'의 실무는 사실상 생장의 집과 메이지 신궁이 중심이었습니다.'

- '일본회의의 정체' 2 100~101p. 일부 생략 있음.

 


상기 인용한 바처럼 원호법제화 운동은 학계와 정재계 우파 모임인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의 창립 계기였을 뿐만 아니라 그 앞서 결집했던 종교계(신토계) 우파 모임인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핵심 사업 중 하나였습니다. 위에서 굵게 처리한 가바시마 씨라고 일컫어진 인물은 현 일본회의 사무총장 가바시마 유조를 말하는 것으로, 이후에도 또 등장할 인물이니 주목하시길.

 

원호법제화 운동에 대한 조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 나라의 행복을 생각할 때, 신사계가 생각하는 행복의 형태가 조금이라도 (정치에) 반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설립한 것이 바로 우리 선배들이 조직한 신도정치연맹입니다.

이 조직의 설립배경을 말하자면 역시 이 나라에 대한 위기감입니다. 특히 그 무렵(신정련이 설립된 1969년경)은 좌파운동이 한창이어서 이대로는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자칫하면 이 나라의 국권과 천황 폐하를 중심으로 한 국체가 침범당한다, 그런 말까지 나돌던 시대였으니까요.


- 이를테면 공산주의에 대한 위기감인가요?

그렇습니다. 바로 그런 위기감에서 신정련이란 조직을 만들었고, 이후 원호법제화 운동이나 건국기념일을 제정하자는 운동을 해온 것입니다.'

- 이사카와 마사토. 신토정치연맹 가나가와 현 본부장, 모로오카쿠마노 신사 신관.

- 2차 출처 : '일본회의의 정체' 3 132p.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을 독려하고 나라를 군국주의 파쇼의 광기로 몰아넣은데 일익을 담당한 국가신토의 후예들이,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체를 유지하기 위해 원호법제화 운동을 추진했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발언하는 모습은 실로 충격적이다 못해 신선하군요.

 

4장에서, 원호법제화 운동은 일본 우파 조직의 정치운동 그 첫 성공사례로서 분석대 위에 오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쟁 전의 구 황실규범에는 원호에 관한 규정이 있어서 메이지나 다이쇼, 쇼와와 같은 원호에 법적인 근거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원호는 전후 폐지되어 법적 근거를 잃었다. 쇼와라는 원호가 일반적으로 계속 쓰였지만 어디까지나 관습에 따른 것으로, 법적 근거가 없었기에 쇼와 천황이 서거한 때는 쇼와가 사라지고 후계 원호가 정해지지 않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보수파와 우파 안에 팽배했다.

 

그런 가운데 신사본청, 생장의 집, 그리고 다양한 민간 보수 단체 등이 전국적인 운동을 전개하여 1978 '원호법제화 실현 국민회의'가 결성되었다. 의장에 전 최고재판소 장관인 이시다 가즈토를 영입하여 활발한 운동을 펼쳤다.

 

그 결과 1979 6월에 원호법이 제정되었다. 그로부터 약 10년을 거슬러 올라간 1966년에는 2 11일을 건국기념일로 정하여 국정공휴일로 삼은 공휴일법이 개정되기도 했다. 2 11일은 전쟁 전의 기원절로, 일단 이것으로 당시 우파 정치운동이 염원하던 '기원절의 부활이 실현됐다고 할 수 있다.

 

두 가지 운동은 전후 일본의 우파 정치운동에서 최초의 '성공체험'이며 이후 운동의 원점이 되었다. 앞장에서 소개한 케네스 루오프의 저서 <국민의 천황 :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와 천황제>에서는 그 경과와 의미를 알기 쉽게 분석했다. 조금 길지만 읽어주기 바란다.

 

[[1950년대 후반에 헌법개정 전망이 불확실해지자, 개정에 열중하던 사람들과 단체는 그 에너지를 다른 문제, 특히 상징 천황에 관한 분야로 돌렸다. 우파단체는 '기원절'(후일의 '건국기념일')의 부활과 원호법제화 운동에 앞장섰고 결국 1979년에 '원호법'이 제정되었다.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공식적으로 원호를 쓰게 되었다.

 

천황제의 재확립을 도모하는 여당 자민당을 향한 비판이 '위로부터' 이어졌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중략)

 

기원절의 부활이나 건국기념일의 확립을 요구하는 운동(1951~1966)이 특히 시선을 끄는 이유는, 그것이 우파단체가 주도한 최초의 운동이며 나아가 상당수 지지자를 불러 모아 기본적인 정치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했기 때문이다. (중략)]]

 

우파에게는 최초의 '성공체험'인 기원절 부활과 원호법제화 운동이 '아래로부터의 국민적 운동'으로 완수되었다는 케네스 루오프의 지적은 흥미롭다.'

- '일본회의의 정체' 4 153~155p. 일부 생략 있음.

 


, 이로서 국가신토의 후예인 신사본청과 이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종교계 우파 결사, 그리고 이들과 발걸음을 맞춰온 전후 시기 각계 일본 우파 인사들이 어떠한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원호법제화 운동을 추진했는지가 명확해졌습니다. 이들은 '천황이 통치하는 일본'이라는 국체를 보존하기 위해, 또한 천황의 격을 높이기 위해 원호법제화 운동을 추진했으며, 이 운동은 헌법개정 운동을 추진하던 흐름과도 관련이 있었음을 말이죠.

 

너무 지나친 과대해석 아니냐고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원호법제화 운동이 결실을 맺어 원호법이 제정됐을 때, 당시 '원호법제화 실현 국민회의'의 사무국장으로 활약하며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실무진이자, 현재 일본회의의 사무총장인 가바시마 유조의 감격에 찬 발언을 한 번 살펴보실 필요가 있겠군요.

 


'(전략) 다시 말해, 일본인으로서 자각을 갖춘 국민통일전선 측과 사회당, 공산당처럼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인민통일전선 측의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 가바시마 유조, '조국과 청년' 1978년 제 37. 2차 출처 : '일본회의의 정체' 4 164p.

 


반대하는 자들은 모두 좌익빨갱이라고 몰아붙이는 태도가 어디서 많이 봤다는 사실은 제쳐놓고서라도, 당시 가바시마 유조가, 그리고 일본 우파들이 어떤 심정으로 원호법제화 운동에 총력을 기울였는지는 이것으로 명약관화해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원호와 천황

 

이처럼 일본의 연호, 즉 원호의 공식적인 부활과 사용은 일본 우익과 천황제에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통용되는 형태의 원호 사용을 공식화하게 된 기원은 근대 일본이 메이지 덴노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일세일원제를 법으로 규정한데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연합군이 새로운 전후 평화헌법을 만들며 이 법적 근거가 사라졌다가, 다시 일본 우익들의 원호법제화 운동을 통해 새로이 근거가 확립된 것이죠.

 

사용, 소멸, 부활까지 일본의 극우 정치세력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 원호, 그렇다면 일본의 우익 세력들은 왜 그렇게 원호법제화에 목을 맨 것일까요? 우리는 그 답을 이전부터 계속해서 언급되었던 하나의 단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덴노(이후 천황으로 표기 통일) 말이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원호라는 것은 천황제에 매달리는 일본 우익들의 도구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 문학계 극우의 상징이자, 이후 그의 사상을 계승한 방패회를 통해 일본 우익 세력의 계보에 그 영향력을 면면히 드리운 미시마 유키오는 이렇게 썼습니다.

 


'천황국 일본은 일본민족이 만들어낸 세계최대의 문화적 유산이며, 이보다 위대한 에술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이 나라를 존중하기를 바란다.

 

진무 천황 건국 이래 260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천황을 통치의 주권자로 계승해온 건국의 이상과 전통을 일거에 무너뜨린 점령군의 힘에 의해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며 그런 주장을 거침없이 반영한 헌법은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

 

(중략) 그러나 오직 한 가지, 자민당 정권이 기사회생할 길이 있다. 그것은 (중략) 천황에게 정권을 봉헌하는 것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한다'는 현행 점령헌법의 무효를 폭로할 시기가 도래했음을 선언하고, '국가통치의 대권은 천황인 내가 선조로부터 계승하였으며, 또한 내 자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제국헌법 포고문)고 선포한, 본디 일본민족의 국민성 전통에 따른 국가형태로 돌아가야 한다.'

- 미시마 유키오, '점령헌법 하의 일본'.

- 2차 출처 : '일본회의의 정체' 2 86p.

 


저기서 '일본민족의 국민성 전통에 따른 국가형태로 돌아가야 한다' 부분을 강조한 것을 유념해 두시고, 다음 부분을 보시지요. 바로 '원호법제화 운동'을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일본 신사들을 총괄하는 종교기관인 신사본청이 설립한 신토정치연맹의 정책목표입니다.

 


-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황실과 일본의 문화전통을 소중히하는 사회건설을 지향한다.

- 일본의 역사와 특성을 고려한 자랑스러운 신헌법의 제정을 지향한다.

- 일본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야스쿠니의 영령에 대한 국가의례 확립을 지향한다.

- 일본의 미래에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이 건강한 아이들을 키우는 교육 실현을 지향한다.

-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도의 국가,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국가 확립을 지향한다.

- 신토정치연맹 홈페이지, 2차 출처 : '일본회의의 정체' 3 125p.

 


뭔가 점점 더 황당무계해지죠? 근데 아직 멀었습니다. 전쟁 전 및 당시에 국가신토의 신관을 양성하던 관립대학이자 전후 연합군의 손에 폐지되었으며, 이후 정계와 재계 유력자들이 힘을 모아 다시 부활시킨, 신사본청에서 일하는 신관들을 양성하는 양대 교육 기관 중 하나인 신궁 고갓칸 사립대학의 건학 정신을 보시죠.

 


'신궁 고갓칸 교육의 취지는 황국의 도의를 가르치고 황국 문학을 배워 실제로 그것을 운용하는 것이다.'

- 신궁 고갓칸 사립대학의 건립의 본뜻, 건학의 취지, 정신, 사명.


''황국'이란 간단히 말해 '천황이 통치하는 나라' 혹은 '천황을 최고 정신적 통합자로 섬기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 신궁 고갓칸 대학 부속 고갓칸 고등학교의 교직원 연수용 책자의 해설.

- 이상 두 인용 모두 2차 출처 : '일본회의의 정체' 3 130p.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성 상, 그리고 천황을 섬기는 독특한 종교적 특성 상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라고 말하실 분이 (있을까 싶긴 한데) 있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종교적인 우익은 저런 소리를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우익들도 저럴까라고 의문을 품으실 분도 계실 겁니다.

 

그렇다면 현대 일본 우익의 중핵이자, 아베 정권 인사의 상당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회의를 이끌며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총장 가바시마 유조의 저술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요?


 

'천황 폐하와 일본 국민의 관계는 천황 폐하를 나라의 중심으로 우러르고, 천황과 국민 사이에는 정신적인 유대감이 존재하며, 나아가 개개국민이 하나로 이어져 실로 군민 일체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 가바시마 유조, '조국과 청년' 1987 1월호.

 

'개인 중심주의가 만연한 지 이미 오래인 오늘날에 천황 폐하의 병을 안타깝게 여기며 개인과 그룹 행동을 삼가는 학생들의 모습에 큰 의미가 있다.'

- 가바시마 유조, '조국과 청년' 1988 11, 12월호.

 

'쇼와 천황이 붕어하신 슬픔은 천황의 고뇌로 유지되어온 쇼와 국가 정신에 대한 석별에서 비롯된다. 우리를 지탱해온 생존기반의 상실이기도 하다. 이 상실감이야말로 슬픔의 실상이다. 그 안에서 새로운 결의가 태어난다. 돌이켜보면 일본 국민은 역대 천황 폐하의 교체를 통해 여러번 이를 체험해왔다. 일본 국가의 저력은 여기에 있다.'

- 가바시마 유조, '조국과 청년' 1989 3월호.

 

'오늘날의 일본은 제정일치라는 국가철학을 정교분리 사상에 따라 부정하는 풍조가 있다. 유럽의 권력정치와 종교전쟁에서 비롯된 타협의 산물인 정교분리 사상을 토대로, 제정일치 국가철학을 부정하는 것은 (중략) 실로 역사를 모독하는 어리석은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가바시마 유조, '조국과 청년 1990' 8월호.

 

'일본의 정치사는 천황이 문신, 무사, 정치가에게 정치를 '위임'해온 것이 전통이다. 천황이 국민에게 정치를 위임해온 것이 일본의 정치 시스템이므로, 서양의 정치사와는 완전히 다른 역사다. 천황이 국민에게 정치를 위임하는 시스템에서 주권은 어느 쪽에 있는가, 이에 관해 서양적인 양자택일론을 그대로 도입하면 일본의 정치 시스템은 해체된다. 현행 헌법의 국민주권 사상은 이 점에서 부정되어야 한다.'

- 가바시마 유조, '조국과 청년' 1993 4월호.

 

'이번 '국립추도시설' 건설 책동은 중국·한국의 외압에 굴복하여 야스쿠니 신사가 체현해온 '군민 일체'의 국체를 파괴하려 한다는 것이 최대문제다. 가공할 폭동을 단호히 저지할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가바시마 유조, '조국과 청년' 2002 7월호.

 


주권재민의 부정, 제정일치 국가의 건설, 천황과 국민이 하나가 되는 군민일체의 국가. 실로 퇴행적이고 끔찍하기 그지없는 비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나 그 비전이 과거 수 많은 사람들을, 자국의 국민들을 포함하여 전쟁과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더더욱 말이죠.

 

이런 끔찍한 비전을 실현하여, 일본 사회 전반에 천황 중심의 국가 정신을 확립하고, 국민에게 이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천황과 일체화시키고 복속되게 만들도록 설득하는 수많은 도구 중 하나에 바로 일본의 '원호'가 있습니다. 일본 우파가 원호법제화 운동에 매달렸던 이유가 다시 한 번 명확해지는 순간이죠.

 

원호의 교체로서 새로운 천황의 즉위를 기리고, 이를 한 시대의 교체인 마냥(실제로는 정책, 경제, 사회상 측면에서 어떠한 변화도 줄 수 없는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천황의 교체가 일본 국민 개개인의 삶의 전환점인 마냥 인식시키며, 결국 일본 국민의 정치와 사회와 생활 면면에 천황이라는 시대착오적 상징을 결속시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드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는 일본 우익이 늘 목표로 하던 천황 중심의 국가, 전쟁 전 제국헌법 체제로의 회귀를 위한 발판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원호'의 쓰임새이자 진면모인 것입니다. 아베 정권이 새로운 연호로의 교체를 우악스럽게 대형 이벤트로 꾸미고 널리 알리며 선전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죠.

 

과대해석 아니냐고요? 위에 기재해 놓은 가바시마 유조의 1989 3월호 저술 부분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이 점이 더더욱 명확해 집니다.

 


'쇼와 천황이 붕어하신 슬픔은 천황의 고뇌로 유지되어온 쇼와 국가 정신에 대한 석별에서 비롯된다. 우리를 지탱해온 생존기반의 상실이기도 하다. 이 상실감이야말로 슬픔의 실상이다. 그 안에서 새로운 결의가 태어난다. 돌이켜보면 일본 국민은 역대 천황 폐하의 교체를 통해 여러번 이를 체험해왔다. 일본 국가의 저력은 여기에 있다.'

 

이제 위의 발언을 읽고 사나의 SNS 메시지를 다시 읽어보시죠.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헤이세이가 끝나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지만 헤이세이 수고하셨습니다!!!

레이와라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헤이세이의 마지막인 오늘을 깔끔한 하루로 만들어요!

#헤이세이고마워 #레이와잘부탁해 #FANCY도잘부탁해'

 


'천황의 고뇌로 유지되어온 쇼와 국가 정신에 대한 석별'에서 '헤이세이가 끝나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다는 말과 '수고했어 헤이세이' 발언을, '일본 국민은 역대 천황 폐하의 교체를 통해 여러번 이를 체험해왔다'에서 '레이와라는 새로운 시작' '레이와잘부탁해' 해쉬태그를 떠올리는 것이 과연 일각의 말처럼 '저열한 선동'이고 '악의적인 해석'이며 '아무런 책임질 일도 문제도 없는'것을 '자극적으로 접근'한 것일까요?

 

판단은 여러분에게 달려있겠지만, 저는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해프닝이 아닌, 명백한 잘못

 

사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요. 한국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으로서 잘못했으며, 일본 시민으로서 잘못했습니다.

  

위에서 길게 설명했다시피 일본의 원호는 그 폐지와 부활부터 명백한 일본 우익의 작품이자, 전쟁 전으로 복고하려는 정치적 의지를 투사하고, 그 의지의 일환인 천황제를 일본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강력한 프로파간다 도구이며 군국주의 일본 식민제국이 남긴 또 하나의 더러운 유산입니다. 이러한 유산을, 한국에서 활동하며 한국인의 돈을 받는 연예인이 SNS에 게재했다는 것은 본인의 진의와 의사와 상관없이 한국인 소비자의 반발을 받을 사유가 충분하며, (개인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흰소리라 생각하지만) 연예인으로서 정치적/사상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도 배치됩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그런 의도가 아니지 않은가? 일본인 대다수가 원호에 대해 그저 새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것처럼 하나의 전환점처럼 생각하고 있고, 사나도 그 중 한 명일 뿐이지 않은가? 정치적으로 쓴 발언이 아닌데, 정치색을 씌워서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 아닌가?'라고요. 그래서 잘못했다는 겁니다.

 

왜 이토록, 사나를 포함한 일본인들은 자신의 발언과 행동에 담긴 정치적 배경을 깨닫지 못하며, 누군가 이를 비판해도 깨달을 생각도 없이 그저 무섭다는 마냥 말만 하고 말까요? 이 원호법제화 운동과 관련 단체들의 활동은 일본 내에서 공공연히 각 단체의 홈페이지를 통해, 원호와 관련된 서적을 통해 게시되며 공유되는 내용입니다. 특정비밀보호법으로 논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거나, 무슨 누구도 모르는 숨겨진 음모론 따위가 아니란 겁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평범한 교양 지식이란 말입니다. 왜 정치적인 발언을 정치적이지 않은 마냥 접근할까요? 왜 그렇게 정치에 무관심한 걸까요? 왜 그렇게 무지할까요?

 

결국엔 또 '탈정치화'입니다.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을 지니고, 정치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며, 정치적인 영향을 끼치는 '원호'가 정치적인 접근과 고찰의 대상이 아닌, 그저 문화의 한 요소로 수용되며 결국 어떠한 비판과 검증도 없이 일본인 개개인에게 스며들어 완전히 정착하는 이 모습은 '탈정치화'라는 세탁 과정의 또 다른 성공사례입니다. 일본 시민으로서 자국의 문화적 요소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비판을 받자 이에 대해 생각해보기보단 그저 내 생각을 밝히는 걸 조심해야겠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 이것이 일본이라는 나라의 시민으로서 사나가 저지른 잘못입니다.

 

사나만 잘못했을까요? 아닙니다. 이 사건을 비추는 연예언론들의 태도도 한심했습니다. 하긴 언론사 연예부에 무엇을 기대하겠냐만, '원호'의 기원과 그 의미에 대해 제대로 고찰하는 곳이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그저 '일반적인 일본인들은 원호를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여긴다'라는 인식만 확대재생산해서 전파했을 뿐이죠. '일반적인 일본인'들이 천황에 대해 어떻게 여기고 생각하며 어떻게 발언을 조심하는지는 찾아봤을까요? 역대 연호 교체 시기(천황의 붕어와 즉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아봤을까요? 그랬다면 '해프닝'이라는 허망한 결론은 결코 나오지 않았을겁니다.

 

그렇다면 이 일에서 사나를 옹호하며 문제가 없다고 한 학계 교수님들은 무엇을 잘못 안 걸까요? 간단합니다. 이 분들은 일본을 너무 상식적인 국가로 여기셨습니다. 때문에 천황제에 대한 접근이 없었고, 일본 우익들이 원호를 법제화하기 위해 집요하게 활동해왔다는 사실을 모르셨거나, 알고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연호는 다른 나라에도 있던 것이었으니까, 왕이 있다면 연호를 사용하는게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니까요.

 

사실 이 부분도 집요하게 파고들면, 현재까지 입헌 군주제를 유지하는 국가 중 왕이 교체될 때마다 연호를 교체하는 국가가 남아있기는 한가를 생각해보면 전후 민주주의 국가인 일본의 비정상성을 눈치챌 수 있는 부분이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않으셨고, 거기서 나온 결론이 연호는 군국주의와 관계가 없다라는 오류였던 거죠. 애시당초 연호를 처음 사용하던 시기엔 이런 식의 천황의 즉위 기간과 궤를 같이하는 형태가 아니었으며, 메이지 덴노 시기, 즉 근대 일본 제국이 확립되던 시기에 지금의 형태로 바뀌었다는 것은, 지금의 '원호법제'의 시작이 근대 일본 식민제국의 성장과 그 궤를 같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 사건에서 사나 편을 들면서 사나를 욕하는 것은 과민한 반응이며 자극적인 이슈에 선동당한 어리석은 국민들의 추악한 모습이라고 규정하고, 한 발 더 나아가 이 사건을 여초 페미들의 동란이라고 규정짓고 비웃은 수 많은 인터넷의 쿨한 식자들은 무엇을 잘못한, 아니 잘못하고 있는 걸까요?

 

 

제가 그걸 굳이 말해야 할까요?


Posted by 컴덜

적악여앙 - 악행이 쌓이면 그 화가 자손까지 미친다.

 

죄의 대가는 더디지만 반드시 오는 법.

 

- 두 어구 모두, KBS 특별기획드라마 '각시탈'에서 인용.

 

 

Posted by 컴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