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게임의 끝, 감동의 순간, 성취의 순간.. 엔딩이란 것은 싱글플레이 캠페인과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는 게임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최근 들어서 온라인 게임들이 많아지며 엔딩이 없어지는 게임들이 급격하게 늘어났지만, 스토리텔링에 신경좀 쓴다는 잘 만들어진 온라인 게임들은 게임 내적 요소로 진행하고 있는 스토리의 끝을 넣기도 하죠. 그만큼 엔딩이란 건 게임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고, 스토리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그 진행과정만큼이나 정말 중요한 요소고, 심한 경우는 게임 전체의 재미를 좌지우지하기도 하는 그런 요소입니다.
개인적으로 전통적인 게임의 엔딩이라는 것은 플레이어의 노력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의 끝에서, 모험을 끝내고 안식을 얻는 것은 주인공뿐만은 아니죠. 그 주인공과 말 그대로 영혼까지 함께 해온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안식이고 보상이기도 하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여기서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확밀아와 같은 그런 카드 수집 스크립트는 게임으로 치지 않습니다.)
<별다른 스토리가 없었던 엑스컴 에너미 언노운. 그러나 엔딩의 감동, 그리고 그 성취의 순간을 누가 잊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런 좋은 엔딩만 있는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한 사람들의 노력을 모두 X이나 X먹으라는 듯이 대하고, '우리가 원하는 [감동적인] 메세지는 이거야! 이거라고!'라고 외치며 플레이어들의 기분을 잡치게하고, 심지어 게임성까지 깎아먹어 버린 사례는 의외로 많습니다. 심지어는 스토리에서 계속 말해왔던 주제의식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제작진의 변태적인 자의식 만족에 집착하는 경우도 상당하고요.
혹은 그냥 성의없이 대충 만들다가 망쳐먹는 사례도 많지요. 이럴 경우에는 과정이 아무리 좋았어도 마지막 인상이 최악으로 남으면서 다른 의미에서 게이머들의 노력을 무위로 돌려버립니다.
<하지만 '너희는 다 똥이야! 똥이라고!'라고 외치며 하던 사람들의 기분을 잡치게 하는 엔딩도 있죠.>
<니들이 뭘 하건 너흰 안돼 ^^>
<엔딩 뿐만 아니라 엔딩 직전의 연출도 엔딩의 느낌을 다르게 합니다. 리륨-합체! 티-빈-터 로이드!는 그야 말로 '병맛'의 진수였죠.>
그런 의미에서 킬존 쉐도우폴의 엔딩은 참으로 평가하기 곤란한 물건입니다. 분명 그 순간의 황당함을 생각했을 때에는 명백한 후자에 속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러한 결말로 가는게 어찌보면 당연했었고, 또 그래야만 했기에, 그리고 그 의미를 곱씹게 하는 엔딩 후의 시크릿 미션의 연출은 또 다른 씁쓸한 맛을 남기기에, 다른 시점에서 평가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 물론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엔딩'만입니다. 킬존의 스토리 게임 내 연출 및 싱글플레이 구성은 그야말로 지루 그 자체니까요.
<벽, 그리고 평화 속에 대립하는 두 세력, 서로의 입장, 그리고 서로를 향한 증오. 소재 자체는 정말 좋았지만 정작 스토리 구성은...>
킬존 쉐도우폴의 스토리 골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2번의 대전 동안 헬가스트의 행성 헬간은, ISA의 '전범인 헬간 제국 최고 지도자 체포'를 목표로 한 '아크엔젤 작전'의 일환으로 침공당해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ISA측 주인공의 수송기 격추로 인해 행성 전체에 대량살상병기인 변형 페트루사이드 물질이 퍼져 행성 전체가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해버렸죠. 여기서 웬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자비를 베푼 ISA의 배후 단체인 UCN은 헬가스트들이 침공했던 벡타 행성의 절반을 실향한 헬가스트들이 살 수 있도록 내주게 됩니다. 아니 왜?? 애초에 막장행성에 가둬놓는 짓을 방조했던 UCN이 갑자기 양심이라도 차렸나.
어쨌건 UCN의 자비로 벡타 행성, 그리고 수도인 벡타 시티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 헬간 제국은 이 곳을 뉴 헬간이라 이름붙이고는 기존에 살고 있던 거주민에 '헬간 제국'의 법을 적용해서 이사할 시간도 주지 않고, 개인 짐만 챙겨서 무자비하게 강제 추방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추방에 순순히 따르려는 사람들도 마구잡이로 사살합니다! 그리고 ISA의 하부 조직이자 벡타 시티의 치안국은 '협정 때문에' 그걸 보고만 있고요. 분명 전쟁에 이긴게 UCN하고 ISA 아니었습니까? 도대체 본성까지 털려 망해가던 헬간 제국이 이럴 배짱은 어디서 나올까요?
그리하여 주인공은 어린 시절 때, 행성 수도의 반절 지역에서 무차별적으로 학살을 벌이는 헬간 군에게 아버지를 여의고, 그 때 도시의 벽 너머(헬간 지역과 벡타 지역을 나누는 장벽)로 가는 것을 도와주었던 VSA(벡타 보안군)의 쉐도우 마샬 소속인 싱클레어에게 입양되어 길러지게 됩니다. 이후 주인공은 최 연소 쉐도우 마샬 생도생이 되고, 수 년간 실전경험(물론 벽 너머의 뉴 헬간을 상대로 한 블랙 옵스)을 쌓으며, 그 새 섀도우 마샬의 지휘관이 된 싱클레어의 양아들이자 최정예 직속 요원으로 거듭나게 되죠. 한편, 뉴 헬간은 쉐도우 마샬, 그리고 싱클레어가 짐작한 대로 벽 너머에서 무언가를 꾸미고, 끊임없이 벡타 시티를 도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벽 너머로 잠입하게 되고, 그곳에서 발각되어 뉴 헬간 당국에 포로로 잡히면서, 장벽을 두고 첨예한 대립을 벌이는 뉴 헬간과 벡타 시티의 갈등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됩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게임이 시작됩니다. 초반부의 말도 안되는 전개를 제외하면 상황 조성 자체는 좋아요. 또한 조성된 상황 역시 좋은 연출을 뽑아낼 수 있는 소재였습니다. 하지만...
게릴라 게임즈의 처참한 싱글플레이/스토리 구성과 연출력은 정말 끝내주는 형태로 이 게임에 조성되었습니다. 작중 상황 자체가 납득이 안가고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이가 없었어요. 아니 뉴 헬간 지도자의 딸과 주인공을 포로 교환을 하는데 헬가스트 쪽에서 포로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도중에 로켓을 쏴갈기고 교전이 일어나지 않나(이 시점에서 이미 전쟁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정작 총을 빼앗고 그 총을 주인공에게 겨눈 지도자의 딸은 한 번 썩소를 짓고 가버린다거나, 거기에 포로교환으로 도착한 주인공을 양아버지란 인간이 온지 하루도 안돼 다시 벽 너머로 되돌려보내고, 그 벽 너머에서 최소한의 위장도 하지 않은 VSA 정규군이(그러니까, 북한에서 간첩활동을 하는데 국군복을 입고 있었던 꼴입니다.) 뉴 헬간 상공에서 VSA 드롭쉽타고 날아다니다가 격추되어(???????????????) 고립된 걸, 뉴 헬간 측의 대공포를 날려버리고 구출 헬기를 보내서 대놓고 구출합니다.
니들 협정 중이라며? 게다가 말로만 협정이다 뭐 그런 분위기도 아닌게, 이 벽을 두고 바로 양측의 수도가 있고, 차 돌아다니고 사람들 거리에서 담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베를린의 상황보다 더 전쟁나기가 쉬운 상황이었죠. 베를린 장벽은 한쪽 베를린이 고립되있기라도 했지, 이건 그게 아닙니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에서 헬기를 대놓고 보내고 대공포를 뽀갭니다.
그래도, 나름 의미심장한 전개라고, 이게 전작에서 악명 높은 군국주의 모습을 보였던 헬간 제국이 하는게 아니라, 주인공이 속해있는 쉐도우 마샬이 정보를 수집한다고 헬간 측에 침입해서 저지르고 있는 일이라는 걸 계속 보여주는데, 싱글 미션의 정말 재미없는 연출과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 환상적인 스토리 텔링으로 인해 이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점은, 나름 중요한 점이니 일단 알아두도록 합시다.
이후에도 엉뚱한 상황은 더욱 더 심화됩니다. 쉐도우 마샬 주체로 비밀 생물학 실험을 연구(정보기관이 생물학 실험을 한다고?)하고 있던 연구 프로젝트에서 선내 선원들이 생물병기로 사망하고, 싱클레어는 '이 연구 프로젝트 책임자가 헬간 측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것 같음, 걔 좀 족쳐. 다른 사람들은 우릴 극단주의자라고 하지만 넌 나를 이해하지! 내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라고 하면서 주인공을 보냅니다. 이 대사 자체가 복선으로 작용하는 건 훌륭한 연출이었습니다만, 도대체 ISA의 과학자가 뭐가 아쉬워서 헬간 제국으로 넘어갑니까? 이건 한국의 최고 과학자가 북한으로 귀화하겠다고 자기가 하던 프로젝트를 사보타주하는겁니다. 아니, 북한보다 더하죠. 헬가스트는 정상적인 산소로 호흡할 수 없어서 공기순환장치를 달고 다니고 있고, 뉴 헬간은 그런 생존조건에 맞추어 재조성되기 위해 무차별적인 대기오염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니까요. 아예 '다른 인종'입니다. 도대체 그런 곳으로 왜 귀화를?
게다가 이 과학자가 하고 있던 연구는 헬가스트만을 선택적으로 인식해 학살하는 변형 페트루사이드의 연구 및 생체 실험이었습니다. 아, 이 소재 자체는 좋습니다. 하지만 말이 안되잖습니까. 전쟁에서 다 이긴 ISA가 왜 이걸 연구하고 있습니까? 킬존 1,2,3에서 개고생했던 ISA군의 분투는 뭐가 됩니까. 이건 마치 헬간 제국이 전쟁에서 이긴 것 같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다 넘어간다고 칩시다. 과학자가 양심 때문에 귀화하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반쯤 정신이 나가서 '너희 다 죽을거야. 죽어'이러고 있는 여자가 잘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겠습니다. 귀화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하.. No answer...
더 까면 머리만 아파지니까, 엔딩과 엔딩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전개에 집중하도록 하죠. 참고로 아직 이야기할 거 한참 많습니다. 뉴 헬간으로 입국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정작 그 줄 선 사람들은 헬간 제국의 비인간적 처사에 대해 불평하고(아니 그럴거면 입국은 왜하세요), 그 입국을 받아주는 체크포인트가 있고(?) 사람이 살 수 없다던 원래의 헬간 행성에는 무슨 전함이 잔뜩 주둔한 거대한 군사기지가 있고(?)..
여하간, 이 과학자를 처리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저번에 만났던 지도자의 딸, 에코를 다시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때는 서로 칼질 한 번 나누고 끝납니다. 그리고 잡일 좀 처리하다가, 주인공은 다시 벽 너머로 들어가서 또 붙잡히고 마는데 여기서 뉴 헬간의 지도자가 전작의 등장인물인 헬간 제국의 수뇌 3인 중 한 명의 꼬임을 받아 위에서 언급한 과학자의 연구를 일반 사람을 선택적으로 학살하는 병기로 바꿔서 쓰려고 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 더불어 이때 헬간 제국이 최초로 벡타 시티에 테러를 합니다. 네. 최초. 도대체 누가 나쁜놈입니까? 아니 오프닝 연출에서 헬가스트를 대놓고 정신나간 애들로 표현했으면 쭉 그렇게 하던가. 여하간, 포로로 잡힌 주인공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풀려나는 데, 그게 바로 에코. 어디 국내산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러브라인의 문제는 아니고, 에코의 요지는 "우리는 그냥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니들이 자꾸 건드니까 어머니(지도자)와 사람들이 극단주의로 치닫고 있다. 그게 방금 테러로 터져버렸다. 전면전 가면 양쪽의 죄 없는 사람만 죽는다. 그러니 서로 일단 무기를 내리고 냉전으로라도 평화를 유지하자. 너 쉐도우 마샬 대빵 양아들이니까 니가 어떻게든 설득해봐라"였습니다. 게임 내적인 묘사와 전개(그 와닿지도 않고 기억에 남지도 않는 암시)로는 저 말이 맞습니다만,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그럼 오프닝의 대량 학살은 뭔데..? 하여간, 에코는 그런 말을 하면서 뉴 헬간의 처참한 실상을 보여줍니다. 아마 페트루사이트 때문에 격리당한 사람들이 사는 곳 같은데, 이 곳을 돌아다닐 때의 연출이 제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의미있는 부분'입니다. 헬가스트 사람이 뛰쳐나와서 깡통을 던지며 주인공을 '벡타인 살인자'라고 칭하며 '꺼져! 제발 꺼져!'라고 한다던지, 한 사내가 아내를 부여잡고 '아내는 왜 죽어야했나요'라고 중얼대다 '저도 죽을 준비가 됬습니다. 절 죽여주세요'라고 하고 있다던지.. 하여간 연출로 괜찮은 부분은 여기가 유일합니다.
하지만 연출이 좋은건 좋은거고 말이 안되는건 안되는거죠. 이 처참한 광경을 보고 마음이 움직인 주인공은 무려 아버지를 잃게 한 헬가스트에 대해 진정하고 무기를 내리고 평화를 찾자라는 주장에 동조하게됩니다.
?
??
자. 우리 간단하게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여기 서울에 살던 평범한 한 가정이 있는데, 갑자기 '협정'으로 인해 서울의 이름이 '뉴 도쿄'로 바뀌고 갑자기 들이닥친 자위대가 이사갈 시간도 안주고 사람들을 학살해대고 도시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잃은 아이가, 현지에서 사람들을 보호하던 현역 국군 대위에게 구출되어 입양된 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유언을 생각하며 양아버지의 보살핌과 교육 아래 군사 공부에 매진해 군 정보사령부의 침투요원으로 거듭난 사람이 있습니다. 수십 번의 침투/대침투 작전 경험은 물론이고요.
이런 사람이 퍽이나 일본을 용서하겠죠. 그렇고 말고요.
더 간단히 말해서, 후쿠시마 사람이 고통받는걸 보여준다고 해서, 우리가 일본의 과거사를 용서합니까? 아니잖아요? 과거에 나라를 잃어본 경험이 벡타인에게 있냐고 물어보시면, 헬간 제국이 침공한 행성이 벡타였습니다. 네.
하여간, 주인공은 용서합니다. 네. 에코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의 양아버지를 설득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그 황당하면서도 다시 생각할수록 씁쓸하고 불편한 결말을 향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벽 사이에서 한창 교전을 벌이고 있는(왜 장벽인데 사이가 있는진 묻지 마십쇼. 뭐 공백구역이라도 있나보죠. 근데 위의 컨셉아트나 연출로 보면 그런거 없던데..)지역을 지나 무사히 구출되 양아버지 싱클레어에게 가서 에코의 제안을 전달합니다. 싱클레어의 반응은 당연히 '법↗규↘'였죠. 근데 여기서 싱클레어의 대사가 의미심장합니다.
"우리는 수 년 동안이나 저놈들이 진짜 위협이란걸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려고 해왔고, 그리고 저놈들을 몰아내려고 했어. 그런데 이제 그럴 기회가 왔는데 무기를 내려놓고 사태를 수습하자고?"
그렇게 말하고는, 주인공에게 '네 아버지가 부끄러워하실거다, 다시 한 번 내게 네가 믿을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라'라고 하면서 헬간 쪽으로 넘어간 그 과학자를 다시 데려올 것을 주문합니다. 더불어 연구 자료도. 그리고 주인공은 그걸 수행하러 가는 길에 다시 한 번 에코를 만나게 되고, 결국 그 과학자의 연구를 사보타주합니다. 그리고 에코는 그런 주인공의 이름을 불러 주면서 '이제 우리 둘다 갈데 없는 신세(Outcast)다'라고 자조하고는, 주인공과 함께 이 미친 전쟁을 막기로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연애감정 묘사는 없습니다. 그나마 높이 쳐줄 부분이죠.
그리고 주인공은 여차저차해서 마침내 변형 페트루사이드, 즉 테라사이드를 살포하려는 헬간 제국 내 극단주의자(위에 말했던 구 헬간 제국 수뇌 3인 중 한 명이 이끄는)의 시도를 막아내고 그 조직의 지도자인 '요한 스탈'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리고...
- 지금부터는 이 게임의 엔딩에 대해서 말합니다. 혹시 엔딩을 직접 보실 분이라면 읽는 걸 자제해주세요. -
"펄사가 지상 팀에게, 무기를 찾았다."
"난 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루카스. 이 빌어먹을 개자식들이 우리에게서 모든걸 뺏어간 그 때 부터 말이야. 난 니가 내 신뢰를 잃어버린 사람 중 하나가 될 거라곤, 내가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리라고 생각지 못했어."
"뉴 헬간이 그 존재를 이어가는 나날들 동안, 우리는 위협 아래에 놓여있었어. 나는 그들에게 그 위협이 뭔지 보여줬지. 그리고 이제 난 우리가 어떻게 그 위협을, 영원히 제거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난 항상 널 보호하려고 애써왔단다. 아들아."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게 유감이구나."
- 쉐도우 마샬 기관장 싱클레어, 전쟁을 막으려던 루카스 켈란을 사살하며.
"저는 헬가스트가 우리 행성에 첫 발을 디디던 날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공존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던 그 시절을, 그들의 고통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인간성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그 날을. 그러나 그건 잘못된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때 그들이 진정 누구인지를 그 진실을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깨닫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진실이란, 헬가스트는 이미 예전에 그들 스스로 인간성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비정상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가치에 대해 공감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동정을 살 자격조차 없습니다."
- 쉐도우 마샬 기관장 싱클레어, 벡타 시티에서 승전기념 연설을 하며.
"켈란을 위해."
- 에코, 싱클레어를 저격하며.
네. 얼핏 보면 황당하기까지 한 주인공의 허무한 죽음이란 엔딩은 (비록 보여주고 알려주는 능력 자체는 지나치게 부족했으며 허섭스레기에 가까웠지만) 작중 내내에 반복되던 싱클레어의 강경한 태도와, 그의 말과 '선제공격', '공개도발', '생체실험'등을 진행하던 이해가 가지 않는 쉐도우 마샬의 행동이라는 흐름이, 싱클레어의 마지막 말과 연설, 그리고 '더 이상 갈 데 없어진 사람이 아니게 된' '누군가와 함께 하며' 싱클레어를 사살하는 에코의 모습으로 이 졸작 속에서 그나마 건질 만한 하나의 훌륭한 흐름을 완성해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게임에서 지나칠 정도로 과장된 영웅담에 시달려, 그것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고 무감각해져왔습니다. 게임에서야 태스크 포스 141이 쉐퍼드의 음모를 막아내고 마카로프까지 족치며 미국과 러시아의 전쟁을 막아내고, 워독 분견대가 4대 만으로 양 국가에 숨어있는 벨카 잔당의 음모를 분쇄하고 급진주의자들까지 깔아뭉개며 평화를 구가하게 할 수 있었겠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입니까? 킬존 쉐도우폴에서 주인공과 에코가 전쟁을 막아내기로 결의했을 때, (이 게임의 정말 지루한 스토리텔링과 형편없는 게임성에도 불구하고)많은 게이머들이 이 둘이 전쟁을 막아내고 그 경험으로 행복하게 살겠구나 라고 영웅담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현실은 너무나 어이 없는 두 발의 총알로 인한 좌절, 그리고 그 뒤에 닥쳐온 냉엄한 현실-즉, 생물무기의 사용으로 인한 대량살상과 새로운 전쟁영웅의탄생-인거죠. 애초에 두 세력간에 전쟁을 원하는 자들의 치밀한 계획(헬간 제국 쪽은 요한 스탈의 극단주의자들, 벡타 시티 쪽은 생체실험까지 하는 싱클레어)이 있었고, 그 중 싱클레어는 없는 전쟁을 일으키고 조작해내기 위해 공개 도발을 감행하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런 자들의 전쟁 계획을 단 둘이서 막아내겠다?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이야기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그러나 지독히도 현실적인 씁쓸한 결말로 흘러갔습니다. 주인공은 억 소리 내지도 못하고 죽고, 생물 무기는 사용되어 헬간 제국과 헬가스트는 인종청소를 당했으며, 인종청소를 한 당사자인 싱클레어는 전쟁영웅으로 공공연히 연설을 하고, 그리고.. 이 모든 참사를 막고자 헬간 제국을 배신했던 에코는 이제 헬간 제국의 잔존병들과 함께, 켈란의 복수를 위해 벡타시티 한복판에서 싱클레어의 가슴팍에 총탄을 꽂으며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고 부정했던 테러와 전쟁행위의 방아쇠를 당깁니다.
결국 이야기는, 현실의 흔한 이야기들 처럼 모든 것이 꼬여버리고 피가 흐르는, 지독하게도 쓰디 쓴 결말로 흘러갔습니다.
우리가 원했던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였죠. 남녀 둘로는, 전쟁을 막을 수 없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상식과도 같은 이야기. 플레이어의 모든 노력을 무위로 돌려버리는 쓰레기 엔딩,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오히려 쓰레기같던 스토리에서 이 부분만이 유일하게 제대로 된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그런 엔딩.
이것이, 킬존 쉐도우폴이 사람들에게 남겨주는 유일한 유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머지는 다 용도폐기처분에 해당하는 폐기물이니까요.